오키 마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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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 마사야는 1952년 일본에서 태어나 배우로 활동하다 1983년 사망한 인물이다. 닛카츠 영화로 데뷔하여 엘란도르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드라마 《태양에 짖어라!》와 《우리들은 천사다!》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1975년 소속사 사장의 양자가 되었고,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할 뻔했으나 질병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1983년 양극성 장애를 앓던 중 도쿄의 한 호텔에서 투신 자살했다. 수려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1970년대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대표하는 스타였으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연예계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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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 마사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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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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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구스노키 조지 (楠 城児, 출생명), 히카게 조지 (日景 城児) |
출생일 | 1952년 6월 12일 |
출생지 |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 |
사망일 | 1983년 6월 28일 |
사망지 |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신주쿠 (게이오 플라자 호텔) |
직업 | 배우, 가수 |
활동 기간 | 1968년 - 1983년 |
경력 | |
수상 | 엘란도르상 신인상 (1969년) |
출연 작품 | |
드라마 | 필살 시리즈 태양에 짖어라! 대추적 우리들은 천사다! |
영화 | 고교생 무뢰공 여왕벌 (1978년 영화) 블루 크리스마스 고도 (1980년 영화) |
기타 | |
공식 웹사이트 | 沖雅也よ永遠に (오키 마사야여 영원히) |
2. 생애
오이타현 벳푸시 출신으로, 본명은 구스노키 조지(楠 城児일본어)였다. 부모의 이혼 후 집을 나와 도쿄로 상경하였다. 1968년 닛카츠 스튜디오에서 영화 배우로 데뷔하였으며, 1969년에는 엘란도르상 신인상을 수상했다.[1] 후지타 토시야 감독의 영화 《8월의 젖은 모래》 주연으로 발탁되었으나, 촬영 중 오토바이 사고로 하차하였다.[2]
이후 히삿츠 시리즈와 태양에게 외쳐라!와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며 점차 인기를 얻었다.[3] 1979년에는 N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은 천사다!》에서 주연을 맡아 새로운 인기를 얻었다.[4][5]
1975년, 소속사 사장이었던 히카게 타다오의 양자가 되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서 요노이 대위 역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질병으로 인해 출연하지 못했다.[6]
1983년 6월 28일, 케이오 플라자 호텔 47층에서 투신하여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7] 그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양아버지 히카게에게 "아버지, 열반에서 기다릴게요."(おやじ、涅槃でまってる。일본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8]
2. 1. 어린 시절과 상경 (1952-1968)
1952년 6월 12일, 오이타현 벳푸시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이름은 楠 城児|구스노키 조지일본어였다. 할아버지는 도쿄 제국대학 의학부 출신 의사로 대형 병원을 경영했고, 아버지는 구제 고등소학교를 졸업하고 석유 도매업에 종사하는 등 유복한 가정이었다.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이타현 오이타시로 이사했으며, 이후에도 시내를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초등학생 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1966년 12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여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으나, 가정 내 불화가 있었다. 결국 1968년 1월 4일,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집을 나왔다. 당시 가진 돈 10만엔과 가방 하나만 들고 도쿄로 향했다. 상경 첫날에는 호텔 뉴오타니에서 숙박했다. 다음 날부터는 이름과 나이를 속이고 숙식을 제공하는 곳에서 일하며 지냈다. 중화소바 가게 점원, 카스테라 공장 배송원 조수 등 여러 직업을 거쳤고, 마지막에는 스낵 바텐더로 일했다.[9]
중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상경했지만, 1968년 배우로 데뷔할 당시 오이타 시내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사토 후미오 대의원과 오이타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오지 중학교 교장으로부터 졸업 증서를 받았다. 이전까지는 오이타 마이즈루 고등학교 3학년 중퇴로 알려져 있었다.[9] 이후 고등학교 과정은 통신 교육을 통해 졸업했다.
2. 2. 닛카츠 시대 (1968-1971)
오이타현 벳푸시 출신으로, 본명은 楠 城児|쿠스노키 조지일본어이다. 부모의 이혼 후 도쿄로 상경하여 생계를 위해 스낵 가게 등에서 일했다.[9] 1968년, 바텐더로 일하던 16세 때 오스카 프로모션 설립 전의 코가 세이이치에게 스카우트되었다. 코가의 소개로 닛카츠에 들어가 영화 『어느 소녀의 고백 순결』로 데뷔하며[9] 오카 미츠코와 콤비로 활동을 시작했다.예명 "오키 마사야"의 '마사(雅)"는 당시 닛카츠 사장이었던 호리 마사히코의 이름 한 글자를 따서 지어질 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주로 조연에 머물렀다. 1969년에는 엘란도르상 신인상을 수상했다.[1]
1971년, 로망 포르노 노선으로 전환하기 직전 닛카츠의 마지막 일반 영화였던 『8월의 젖은 모래』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촬영 시작 직후 오토바이 사고로 부상을 입어 하차하는 불운을 겪었고[2], 이후 닛카츠를 퇴사하고 쇼치쿠로 이적했다.
2. 3. 쇼치쿠 이적과 드라마 활약 (1971-1979)
텔레비전 드라마 『선인장과 마시멜로』 주연으로 발탁되어 인기를 얻었고, 그 외에도 『금메달을 향해 턴!』(후지 TV), 『키이 헌터』(TBS)에 세미 레귤러로 출연하며 유망한 젊은 배우로 주목받았다. 초기에는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렸으나, 점차 성인 연기자로 변신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1972년 영화 『고교생 무뢰배』에서는 주연을 맡았고[10], 쇼치쿠 제작 영화 여러 편에도 공동 주연이나 조연으로 출연했다.1973년에는 필살 시리즈(아사히 방송)의 두 번째 작품인 『필살 처치인』에서 관의 죠 역을 맡아 야마자키 츠토무, 후지타 마코토 등과 함께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1974년에는 NHK 목요 시대극 『뒤돌아보지 마 츠루키치』의 주연으로 발탁되는 등, 이 시기에는 시대극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975년에는 필살 시리즈 제6작 『필살 처치업』에 다시 레귤러로 출연하여, 관의 죠와는 전혀 다른 인상의 냉철한 암살자 이치마츠를 연기했다. 같은 해 1975년, 친아버지의 사망 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소속사 사장 히카게 타다오와 양자 결연을 맺고 히카게 죠지(日景城児)가 되었다.
1976년에는 인기 드라마 『태양에게 외쳐라!』에 스카치 형사 역으로 합류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3] 1979년에는 닛폰 TV 방송망에서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은 천사다!』에서 주연을 맡아 밝고 유쾌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는 등 다시 한번 인기를 누렸다.[4][5]
2. 4. '태양에 짖어라!' 복귀와 투병 (1980-1983)
1980년 3월, 《태양에게 외쳐라!》는 경쟁 프로그램인 TBS의 《3학년 B반 긴파치 선생님》의 영향으로 시청률이 하락했다. 이에 시청자들의 복귀 요청이 쇄도하여 오키는 다시 《태양에게 외쳐라!》에 합류했다.[13] 오키는 복귀에 소극적이었으나, 도호와의 관계와 오카다 신키치 프로듀서의 요청으로 재등장하여 다시 레귤러를 맡게 되었다.[14] 복귀를 앞두고 약 1개월간 달리기를 하는 등 준비했으며, 이번에는 인간미 넘치는 형사를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15] 같은 해 야마구치 모모에의 은퇴 기념작인 영화 《고도》에 출연했는데, 이는 그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 되었다.1981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요노이 역의 유력한 최종 후보였으나, 촬영 스케줄 변경과 오키의 정신 질환 문제로 출연이 무산되었다.[16] 같은 해 드라마 《에도의 아침놀》 주연 등 여러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고, 이는 정신적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결국 1981년 4월 11일, 아버지 묘 참배를 위해 캐딜락을 운전하던 중 도메이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를 냈다.[17] 부상은 가벼운 발목 염좌에 그쳤으나, 이 사고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2주간 입원했다.
퇴원 후 정신 안정제를 복용하며 같은 해 6월 1일 현장에 복귀했지만, 간염이 발병했다. 약 부작용으로 인한 부종과 비만 등으로 양극성 장애가 악화되었다. 복귀 3개월 만에 다시 장기 휴양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태양에게 외쳐라!》에서도 예정보다 일찍 하차하여, 1982년 1월 병사(病死)하는 설정으로 극에서 퇴장했다.[18] 또한 같은 해 닛폰 TV의 《프로헌터》(《대추적》의 후속작 격) 출연 제의가 있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출연하지 못했다.[19] 1982년 6월에는 오키 마사야 특별 공연 《"연검법・젊은이 춘추"》에서 첫 좌장을 맡았다.
2. 5. 사망 (1983)
1983년 6월 28일 이른 아침, 오키 마사야는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신주쿠에 위치한 케이오 플라자 호텔 본관 47층 발코니(높이 170m)에서 경비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31세의 나이였다. 그는 건물 7층 옥상 수영장으로 떨어져 전신에 큰 충격을 받고 즉사했다.오키는 1975년 양자로 입적한 의붓아버지이자 소속사 사장이었던 히카게 타다오에게 おやじ、涅槃でまってる。|오야지, 네한데 맛테루|아버지, 열반에서 기다릴게요.일본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8][20] 유서는 자택에 두 통이 남겨져 있었으며, 투신 직전 호텔 방 메모지에도 유서를 남겼다. 이 메모에는 자신이 쓰카 코헤이의 이름으로 호텔에 체크인한 것과 케이오 플라자 호텔을 자살 장소로 선택한 것에 대한 사과 내용이 담겨 있었다.
투신 직전 오키는 호텔 옥상에서 담배를 피웠고, 경비원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펜스를 기어올랐다. 경비원이 "위험해!"라고 소리쳤을 때는 이미 늦어 막지 못했다. 당시 경비원은 투신한 사람이 오키 마사야인 줄 몰랐다고 증언했다. 히카게 타다오에 따르면 오키의 시신은 등부터 떨어져 얼굴에는 상처가 없었다고 한다.
오키는 1981년 교통사고 이후 양극성 장애(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 안정제를 복용 중이었으며, 간염 발병과 약 부작용으로 인한 부종, 비만 등으로 정신적 불안정이 심화된 상태였다.[17][18]
공교롭게도 오키가 도쿠가와 이에미쓰 역으로 출연했던 간사이 TV 제작 드라마 ''오오쿠''에서도 그가 사망한 당일 방송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설정이었다. 또한, 오사카에서 예정되었던 무대 공연 '잇신타스케'에서는 닛카츠 시절 외모가 닮았다는 평을 들었던 고바야시 아키라가 대역을 맡았다. ''필살 시리즈''의 제작국이었던 아사히 방송은 사망한 주말 심야에 추모 프로그램으로 오키의 데뷔작 ''어떤 소녀의 고백·순결''(1968년 닛카츠)을 방영했다.
오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연예계와 세상에 큰 충격을 안겼다. 6월 30일에 밀장이 치러졌고, 한 달 뒤 소속사 주최로 장례식 및 고별식이 열렸다. 장례 위원장은 쓰카 코헤이가 맡았다. 장례식에는 가츠노 히로시, 로미 야마다, 미와 아키히로, 니타니 히데아키, 시바타 쿄헤이, 사카구치 료코, 와타나베 미사코 등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참석하여 고인을 애도했으며, 시바타 쿄헤이와 사카구치 료코 등이 조사를 낭독했다.[21]
히라 간지로는 오키를 "호접란 같은 사람"이라고 칭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필살 시리즈''에 함께 출연했던 후지타 마코토는 오키가 평소 대화 중 이야기가 갑자기 튀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사망 당일 저녁 신문에 언급했다. 교토 쇼치쿠 촬영소의 와타나베 히사오에 따르면, 오키는 죽기 일주일 전 촬영소를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도에이 일 때문에 들른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작별 인사였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22] ''대추적''의 감독 무라카와 토루는 오키가 사망하기 직전 교토역에서 우연히 마주쳐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23] 친구였던 와타나베 아츠시는 오키가 보통 사람의 두 배 속도로 살다가 지쳐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24] 이시하라 유지로는 오키의 자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태양에게 짖어라!'' 마지막 회에서 애드리브로 오키가 연기했던 스코치 형사의 이름을 언급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오키의 법명은 本然院雅道誓月居士|혼젠인 아도 세이즈키 코지일본어이며, 묘소는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하세데라에 마련되었다.[25]
3. 출연 작품
오키 마사야는 배우 경력 동안 다수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필살 시리즈와 태양에 짖어라!와 같은 인기 시리즈에서의 역할은 그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꼽힌다.
필살 시리즈에서는 필살 사치인(1973)의 '칸노케노 조', 필살 사치 가게 생업(1975)의 '이치마츠', 필살 계략인·후가쿠 백경 살인 여행(1978)의 '토주로' 등 여러 작품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시리즈 프로듀서였던 야마우치 히사시는 오키의 연기가 아직 서툴렀지만 그에게서 특별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기용했다고 밝혔다.[28] 필살 사치 가게 생업의 감독 쿠라하라 이요조는 닛카츠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키의 내면에 보이는 그림자를 살려 연출하고자 했다고 언급했다.[27]
태양에 짖어라!에서는 1976년부터 '스코치 형사' 타키 류이치 역으로 합류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중간에 하차했다가 복귀하는 등, 1982년 극 중에서 순직할 때까지 시리즈의 주요 멤버로 활약했다. 동료 배우였던 류 라이타는 오키가 본질적으로 밝고 서비스 정신이 왕성했지만, '스타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쿨함을 가장했을 수 있다고 회상했다. 오노데라 아키라는 오키가 잘생긴 외모뿐 아니라 이색적인 배우가 될 잠재력이 있었다고 평가했으며, 야마시타 신지는 오키가 일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시리즈의 감독 중 한 명인 다카세 마사히로는 오키를 높이 평가하여 이후 신 에도의 선풍과 에도의 아침노을의 주연으로 기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36]
1979년 작 우리들은 천사다!의 '아소 마사토(CAP)' 역할은 오키 본인이 생전에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역할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서에 자신의 영정 사진으로 이 역할의 사진을 사용해 달라고 남겼으며, 스스로도 이 역할이 자신의 본모습을 가장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다.[30] 이 작품을 통해 젊은 팬층을 확보했으며, 헬리콥터 사다리에 매달리는 등 위험한 장면도 스턴트맨 없이 직접 소화하려는 열의를 보였다.[31]
이 외에도 대추격(1978)에서는 후지 류야와 함께 출연했으며,[29] 프로듀서 야마구치 고는 오키의 뛰어난 신체 능력과 격렬한 액션 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외모를 칭찬했다.[40] 선인장과 마시멜로에서 함께 출연한 카타오카 고로는 오키를 "만화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 멋진 남자"로 기억하며, 연구 열심이고 대사 암기가 빨라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고 회상했다.[26]
목표로 하는 배우는 필살 사치 가게 생업에서 함께 출연한 야마자키 츠토무, 그 외 미쿠니 렌타로, 폴 뉴먼과 이야기했다.
3. 1. 영화
- 어떤 소녀의 고백 순결 (1968년, 닛카츠) - 콘도 토루 역
- 꽃 피는 소녀들 (1968년, 닛카츠) - 카키자키 다이스케 역
- 사랑의 소용돌이 (1969년, 닛카츠)
- 전과 시리즈 (닛카츠)
- * 전과 가석방 (1969년) - 타니하라 켄 역
- * 전과 도스 폭풍 (1969년) - 바타스케 역
- 야쿠자 비정사 피의 술잔 (1969년, 닛카츠)
- 야쿠자의 옆모습 (1970년, 닛카츠) - 사다오 역
- 유흥가 의리 (1970년, 닛카츠)
- 돌격 (1970년, 닛카츠) - 마사미 역
- 꽃의 특공대 아아 전우여 (1970년, 닛카츠) - 오노 신키치 역
- 반역의 멜로디 (1970년, 닛카츠) - 아오야마 역
- 한 번은 가고 싶은 여자 목욕탕 (1970년, 닛카츠) - 시노노메 츠기 역
- 토닌기 바람의 텐구 (1970년, 닛카츠) - 몬지 역
- 네온 경찰 여자는 밤의 냄새 (1970년, 다이니치 영화 배급) - 오사무 역
- 신주쿠 아웃로 날려버려 (1970년, 다이니치 영화 배급) - 리키야 역
- 남자의 세계 (1971년, 닛카츠) - 오가타 오사무 역
- 관동 유랑자 (1971년, 닛카츠) - 타키무라 히로시 역
- 유혈의 항쟁 (1971년, 닛카츠) - 타무라 토루 역
- 고교생 무뢰한 통제 (1972년, 토호) - 무라키 마사토 역
- 두근거림 (1973년, 쇼치쿠) - 미즈노 역
- 남자 아닌가 투지 만만 (1973년, 쇼치쿠)
- 사랑은 방과후 (1973년, 쇼치쿠) - 타도코로 유키치 역
- 더 바퀴벌레 (1973년, 토호·이시하라 프로덕션) - 하야시 역
- 내일 빛나다 (1974년, 쇼치쿠) - 카가 중위 역
- 백열 데드히트 (1977년, 토호) - 시마모토 사부로 역
- 혹성 대전쟁 (1977년, 토호) - 무로이 레이스케 역
- 기타무라 토오코 우리 겨울의 노래 (1977년, ATG) - 이시자카 코레키 역
- 여왕벌 (1978년, 토호) - 타몬 렌타로 역
- 불새 (1978년, 토호) - 우라지 역
- 블루 크리스마스 (1978년, 토호) - 하라다 역
- 소란스러운 장치 (1979년, 토호) - 우마와리 토모히로 역 (특별 출연)
- 트러블맨 웃으면 죽인다 (1979년, 토호)
- 지구로… (1980년, 토에이 애니메이션 영화) - 키스 아니안 역 (목소리 출연)
- 고도 (1980년, 토호) - 류스케 / 미즈키 류스케 역
3. 2. 드라마
- 개와 아사짱 (1969년, TV 아사히) - 노무라 마코토 역
- 화요일의 여자 시리즈 고교생 블루스 클래스메이트 (1971년, 니혼 TV 방송망) - 카와이 료이치 역
- 금메달로 턴! (1971년, 후지 TV / 토호) - 타치바나 잇페이 역
- 선인장과 마시멜로 (1971년 ~ 1972년, 니혼 TV 방송망) - 이토 히토시 역
- 그러니까 정말 좋아! (1972년, 니혼 TV 방송망) - 하야토 왕자(이슈인 하야토) 역
- 1・2・3과 4・5・6 (1972년, TBS 텔레비전) - 나가시마 야스오 역
- 신경 쓰이는 며느리 (1972년, 니혼 TV 방송망 / 유니온 영화) - 무라카미 미즈모리 역 (21화, 22화)
- 청춘을 달려라! (1972년, 후지 TV) - 12화 출연
- 키이 헌터 (1972년, TBS 텔레비전 / 토에이) - 타키 유지 역 (제210화부터 출연)
- * 제210화 「엉터리 키이 헌터 탐정국」
- * 제216화 「꺄악! 여자만 죽이는 병원」
- * 제218화 「브라질 농업 협동조합 갱단 포획기」
- * 제230화 「킬러 글래머 대행진!」
- * 제234화 「힘내라! 작은 카우보이 죽음의 계곡의 결투」
- 작은 사랑 이야기 (1972년, 니혼 TV 방송망) - 무라카미 츠토무(사리) 역
- 빛나는 바다 (1972년 ~ 1973년, 후지 TV) - 노자카 타카오 역
- 태양에 짖어라! (니혼 TV 방송망 / 토호) - 타키 류이치(스코치 형사) 역
- * 제10화 「하맛코 형사의 기개」 (1972년) - 쿠보 형사 역 (가나가와현 하마자키 경찰서, 게스트 출연)
- * 제217화 「스코치 형사 등장!」 ~ 제244화 「안녕, 스코치!」 (1976년 ~ 1977년) - 타키 류이치 역 (도쿄도 나나마가리 경찰서 → 도쿄도 야마다 경찰서, 레귤러 출연)
- * 제274화 「돌아온 스코치 형사」 (1977년) - 타키 류이치 역 (야마다 경찰서, 게스트 출연)
- * 제300화 「남자들의 시」 (1978년) - 타키 류이치 역 (야마다 경찰서, 게스트 출연)
- * 제399화 「폐허의 결투」 ~ 제456화 「보스, 제가 가겠습니다!」 (1980년 ~ 1981년) - 타키 류이치 역 (야마다 경찰서 → 나나마가리 경찰서, 레귤러 출연)
- * 제463화 「6월 잉어 깃발」 ~ 제476화 「라거 형사 등장!」 (1981년) - 타키 류이치 역 (나나마가리 경찰서, 레귤러 출연)
- * 제491화 「독의 헛소리」 ~ 제493화 「스코치여 조용히 잠들라(병사)」 (1982년) - 타키 류이치 역 (나나마가리 경찰서, 레귤러 출연)
- 며느리의 혼담 (1973년,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 오마치 타츠지 역
- GO! GO 스카이어 (1973년, 후지 TV) - 텐치 하야토 역
- 필살 시리즈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 쇼치쿠)
- * 필살 처형인 (1973년) - 관의 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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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살 사냥꾼 (1976년) - 시지미 파는 사람 역
- * 필살에서부터 기계인・후가쿠 백경 살인 여행 (1978년) - 당십랑 역
- * 필살 시리즈 10주년 기념 스페셜 일하는 사람 대집합 (1982년) - 관의 죠 역
- * 연말 잊지 못할 필살 스페셜 일하는 사람 아편 전쟁으로 간다 날아라! 열기구여 홍콩으로 (1983년) - 관의 죠 역 (필름 출연)
- 천황의 세기 제2부 (1973년,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 사카모토 료마 역
- 아버지의 며느리 (1973년, 후지 TV)
- 신쥬로 포물첩・쾌도난마 (1973년 ~ 1974년,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 오야마다 테츠마 역
- 은하 텔레비전 소설 (NHK 종합 텔레비전)
- * 산시로 (1974년) - 오가와 산시로 역
- * 츠카 고헤이의 가출 '83 (1983년) - 하기와라 역
- 반스이인 초헤이 기다려주세요 (1974년, 마이니치 방송 / 토호 / 배우좌 영화 방송) - 당개권병위 역
- 버디 대작전 (1974년, TBS 텔레비전 / 토에이) - 위타전개 역
- 아오바 무성하다 (1974년, TBS 텔레비전) - 와타나베 슌스케 역
- 돌아보지 마 츠루키치 (1974년 ~ 1975년, NHK 종합 텔레비전) - 츠루키치 역
- 오카라의 꽃 (1974년 ~ 1975년,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
- 북두 이야기 (1975년,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 - 히구치 료 역
- 떠돌이 형사 (1975년, 니혼 TV 방송망 / 국제 방송 / 배우좌 영화 방송) - 카게야마 켄자부로 역
- 키노시타 케이스케・인간의 노래 시리즈 / 초춘 이야기 (1976년, TBS 텔레비전) - 히라노 신이치 역
- 숨겨진 시찰 참상 (1976년, 마이니치 방송 / 미후네 프로덕션) - 사키치 역
- 덴시치 포물첩 (1976년, 니혼 TV 방송망) - 여우의 호조 역 (제107화 「뒷골목의 쥐들」)
- 요코미조 세이시 시리즈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1977년, 마이니치 방송) - 미시마 토타로 역
- 토요 드라마 / 마츠모토 세이초 시리즈・의뢰인 (1977년, NHK 종합 텔레비전) - 카와무라 료헤이 역
- 대추격 (1978년, 니혼 TV 방송망 / 토호) - 야부키 시로 역
- 달마 대조수 사건장 (1978년, TV 아사히 / 전진좌 / 국제 방송) - 케이지 역 (제27화 「젊은 요로시」)
- 스가타 산시로 (1978년, 니혼 TV 방송망) - 히가키 겐노스케, 히가키 텟신 역 (1인 2역)
- 우리들은 천사다! (1979년, 니혼 TV 방송망 / 토호) - 아소 마사토(CAP) 역
- 체험 시대 (1979년, TV 도쿄) - 타몬 에이타 역
- 가는 팔 한대기 (1979년,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 - 이치미야 역
- 토요 와이드 극장 (TV 아사히)
- * 눈물・그 녀석은 오늘 밤에도 없어 (1978년)
- * 복수 어떤 여교사의 고백 (1978년)
- * 교토 살인 안내 제1작 「꽃의 관」 (1979년,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 쇼치쿠) - 니시카와 카즈히코 역
- * 니시무라 쿄타로 트래블 미스터리 제3작 「북귀행 살인 사건」 (1982년) - 하시모토 유타카 역
- * 어머니에게 바치는 범죄 (1983년)[49] (오키 마사야 추도 작품으로 방영)
- * 환상의 결혼식 (1985년, 쇼치쿠) - 야마다 형사 역 (1982년 촬영)
- * 욕실의 죽은 미인 (1985년) - 오카무라 쿄 역 (1982년 촬영)
- 에도의 파도 (1979년, 후지 TV / 토호 / 영상 교토) - 하나후사 리츠노스케 역
- 에도의 격투 (1979년, 후지 TV / 토호) - 류지로 역 (제18화 「복수의 늑대」)
- 동심방 어용장 신・에도의 선풍 (1980년, 후지 TV / 토호) - 타치바나 세이이치로 역
- 에도의 새벽 (1980년 ~ 1981년, 후지 TV / 토호) - 시마 사타로 역
- 아카카부 검사 분전기 (1980년,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 쇼치쿠) - 호겐 쇼호 변호사 역
- 신춘 와이드 시대극 / 간에이 어전 시합 (1983년, TV 아사히 / 토에이) - 유이 쇼세츠 역
- 오오쿠 (1983년, 칸사이 텔레비전 방송 / 토에이) - 도쿠가와 이에미쓰 역
- 시대극 스페셜 / 소란인 가리 통과 가는 것도 지옥 남는 것도 지옥 (1983년, 후지 TV / 미후네 프로덕션) - 센쥬로 역
- 화요일 서스펜스 극장 / 천사의 복수 (1983년, 니혼 TV 방송망)
- 히타치 텔레비전 시티 / 가마타 행진곡 (1983년, TBS 텔레비전)
- 신・마츠다이라 우콘 (1983년, 니혼 TV 방송망) - 미노키치 역 (제19화 「저녁의 모정」)
4. 수상 경력
- 1969년 엘란도르상 신인상[1]
5. 평가 및 영향
오키 마사야는 수려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주목받으며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1969년에는 엘란도르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찍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1]
그는 필살 시리즈와 태양에게 외쳐라!와 같은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며 점차 인기를 얻었다.[3] 특히 1979년 NTV 드라마 우리들은 천사다!에서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누렸으며,[4][5] 그의 개성 넘치는 연기는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세계적인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서 중요한 역할인 요노이 대위 역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될 만큼 배우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질병 문제로 인해 최종적으로 출연하지 못했다.[6]
오키 마사야는 오랜 기간 양극성 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 1983년 케이오 플라자 호텔 옥상에서 투신하여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7] 그가 양아버지에게 남긴 おやじ、涅槃でまってる。|오야지, 네한데 맛테루.일본어 (아버지, 열반에서 기다리고 있어요.)[8]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당시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과 연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회자된다.
한국에서도 오키 마사야는 필살 시리즈나 태양에게 외쳐라! 등의 작품을 통해 일부 팬들에게 알려져 있으며, 그의 뛰어난 재능과 비극적인 죽음은 한국 팬들에게도 안타까움을 남겼다.
6. 기타
1975년 소속사 사장인 히카게 타다오의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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